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 등의 3대 비판서를 쓴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1804년 2월 12일, “좋다(Es ist gut).”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70세의 생애를 끝마쳤다. 죽는 그 순간, 무엇이 그렇게 좋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그의 죽음은 완벽하고 깨끗했다. 젊은 시절 내면의 갈등으로 인해 몇 번의 자살을 기도했으나 결국 천수를 누리고 1962년 8월 9일, 85세에 죽은 헤르만 헤세나 “하루에도 죽을 것을 몇 번이나 생각하였다.”라고 습관처럼 중얼거리며 김유정에게 자살을 강요하다 1937년 4월 17일, 동경제대 부속병원에서 만 26년 7개월에 폐병으로 먼저 죽은 이상(李箱)에 비하면 칸트의 죽음은 소름 끼치도록 완벽하고, 깨끗한 죽음이었다.
“난 칸트처럼 살고 싶어. 죽는 그 순간까지 패배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
“그런 것이 어떤 것인데?”
“칸트처럼 철저한 도덕적인 생활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의 삶에 충실히 살다가 마지막 순간은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는 거지. 오프(Off).”
무덥던 어느 여름 밤, 친구와 난 친구의 집 옥상에서 차가운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엷은 안개가 낀 새벽의 도시는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고요했다. 가로등의 백열등 빛은 습기를 머금고 번져 있어 마치, 엷은 파스텔 톤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친구는 맥주를 홀짝이며 말했다.
“지금 당장 죽어도 좋고, 한 시간 후에 죽어도 좋아. 하지만 의미 없이 죽고 싶지는 않아. 칸트처럼 적어도 자신의 삶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싶은 거야. 그리고 미련 없이 죽는 거지.”
“죽는다는 것이 두렵지 않아?”
“죽는다는 그 자체는 두렵지 않아. 다만, 내가 어떤 모습으로 죽을까 하는 것이 두려울 뿐이지.”
그리고 그 친구는 24살의 마지막 날 죽었다. 밤새 나와, 그리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고, 그는 아무렇지 않게 집으로 돌아가 잠이 들었지만 새로운 해의 아침을 맞이할 수 없었다. 그의 죽음에 붙은 이유는 <급성 알코올중독>이었다. 그런 그의 죽음이 그 자신의 마음에 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그 친구는 자신의 삶에 어떤 미련을 가질 여유도 없이, 지나온 과거를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죽었기 때문에 유서와 같은 유치한 것을 남기지 않았다. 행복한 죽음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맞고 있을 때, 참으로 인간이었다. 그는 독배를 마시고 있었다. 그의 제자들은 울고있었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그쳐라! 그대들은 내가 죽은 다음엔 울 수 있어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건 낭비다. 순전히 낭비다. 이렇게 멋진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나는 죽어가고 있는데, 그대들은 울고 있느냐!”
제자들이 말했다.
“선생님께선 죽음이 두렵지 않으십니까?”
소크라테스가 말했다.
“무엇 때문에 두렵단 말인가? 나는 내 삶을 살았다. 나는 삶을 사랑했으며 삶은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삶이 아름답다는 것을 알았으므로 언제까지 그것을 되풀이 할 필요가 없다. 아! 새로운 그것, 죽음은 너무도 새로운 것을. 나는 지금 황홀하다. 나는 지금 전율한다. 이 모험은 정말 너무도 멋지구나.”
소크라테스는 말을 이었다.
“난 이제 죽음이 정말 무엇인지 알고싶다.”
제자 중 하나인 크리토가 말했다.
“그러나 선생님,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소크라테스는 말했다.
“나는 알지 못한다. 왜 사람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는지 난 이해할 수가 없다. 만약 죽음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는 무신론자의 말이 옳다면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나는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나는 그것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도 느끼지 않는다.”
주변의 몇몇 사람들이 상실되어 가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면서 때로는 이런 생각도 했다. 죽음을 왜 슬퍼해야 하는 것일까. 죽음 자체는 슬프지 않다.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비극적인 요소도 없는 것이다. 내가 아는 죽음은 궁극적이고, 절대적인 자유로움이었다. 그래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그것은 ‘이기심’이다, 라고. 정작 떠나는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데 감당해야 할 고통이 두려워 남겨진 사람들은 슬퍼한다. 그것은 이기심이다. 더러운 이기심. OFF.
내 소망은 27살의 겨울에 죽는 것이다. 그렇게 거창한 이유는 없었다. 다만 내 스스로도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너무나 많은 내가 내 안에 존재하고 있어 하루에도 몇 번이나 자기 혐오에 빠져버리고, 그 만큼의 자신에게 너무 쉽게 지쳐버리는 까닭이었다.
누가뭐라해도, 난 남들 평생의 몇 배를 살아왔다. 그것은 어떤 자부심이라던가, 어떤 명예, 어떤 경륜 같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심한 고통이었고, 그리고 지독한 우울함이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줄 수 없었고,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만들기 위해 어떤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무모한 짓도 곧 그만두었다. 내 안에서 아름다운 시어가 사라져가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간다고 해도 난 어디까지나 나 자신일 뿐이었고, 다른 그 무엇도 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묵묵히 술을 마시며 평생 같은 하루가 지나가는 것을 역력히 목도해야 했다.
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잃었다. 누구의 표현처럼, 잃어버린 것들을 차근차근 써 내려가면 대학노트 한 권의 분량은 족히 넘을 것이다. <일각수의 꿈>에 나오는 대목처럼, 누군가 창문을 휙 열고서, “네 인생은 제로야!”라고 소리쳐도 난 할말이 없다.
어떤 사람은 내게 진지한 충고를 했고, 어떤 사람은 날 걱정했으며, 어떤 사람은 동정을 했다. 어떤 사람은 비웃었고, 어떤 사람은 정신병자 취급을 했고, 어떤 사람은 내게 서슴없이 <패배자>라고 했다. 난 그런 그들에게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에 대해 설명을 하기에 이미 마음은 폐쇄와 단절을 거듭하고 있었고, 눈물을 흘리기에는 이미 너무 나이를 먹었다. 내 나이 스무 살 무렵, 난 내 안에서 무수히 충돌을 반복하는 수많은 나 자신에 대해 남들에게 이해시키기를 포기했다. 그것은 내가 아무리 똑같은 표현을 하고, 상황에 적절한 어휘를 구사한다고 해도, 그들은 도저히 이해를 하지 못했고, 나 역시 그들에게 표현할 언어와 적절한 어휘를 찾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사람들과 나 자신 사이에는 모순된 이해가 보이지 않는 장벽처럼 단단하게 둘러쳐져 있었고, 사람들은 나와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자위했다. 어쩌면 정말 각자의 보이지 않는 환상에 갇혀 서로 다른 선들을 달리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죽기를 바라면서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어렸을 때, 난 수면제를 먹으면 죽는 줄로 알았다. 그래서 몇 알의 수면제와 소주를 마시며 그 해의 마지막 날,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난 죽지 못했고, 지독한 두통 속에서 새로운 해의 아침을 맞이해야 했다. 내가 하는 일은 항상 이런 식이었기 때문에, 유쾌하지는 않지만 아직까지 살아있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은 이런 생각도 한다. 언젠가는 나 자신을 구원할 방법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적어도 그때에는 상처투성이가 되어버린 나 자신을 예전처럼 되돌릴 수 있을지 모른다고.
모든 사람들은 죽는다. 방법의 차이와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도 예외일 수는 없다. 난 희망한다. 그것은 죽겠다는 희망도, 살겠다는 희망도, 아무것도 아니다. 다만 죽은 그 순간만큼은 아무런 미련 없이 떠나고 싶은 것이다.
다만 그뿐이다.
" Dec 1996.



